※본 글은 2024년 10월의 여행기이며, 읽는 시점에 따라 정보가 부정확할 수 있음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1. 언제나 계획은 완벽하다

2024년 10월 19일, 군입대를 앞둔 나는 후회없는 마지막 한 달을 보내기 위해 짧게 중국 여행을 다녀오기로 결심했다. 하고 많은 곳 중에 왜 하필 중국일까. 나는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쳐 목적지를 선정했다.

1. 흔하지 않은 곳
2. 티베트 문화를 볼 수 있는 곳
3. 일주일 이내 단기로 다녀올 수 있는 곳
4. 설산이 있는 곳(중요)

이미 가본 적 있는 네팔, 예산을 초과하는 부탄, 일정이 부족한 북인도를 제외하고 나니 남은 건 중국 뿐이었다. 티베트 자치구는 특별여행허가가 필요하고 반드시 가이드를 동행해야 했기에 대안으로 쓰촨성 서부, 동티벳 지역을 택했다.
여행은 총 6박 8일, 토요일 저녁에 출국해 그 다음주 토요일 새벽에 귀국하는 일정이다. 대략적인 계획은 청두(1일) – 야딩(2일) – 리탕(2일) – 청두(2일)로, 출국 당일 밤 청두에 도착해 1박 후 오전 국내선으로 야딩으로 이동할 계획이었다.

2. 야딩을 찾아가는 방법

야딩풍경구는 쓰촨성 내에서도 서부, 티베트 고원이 시작되는 지점에 위치해 있다. 외국인 관광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이 오지에 접근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 루트가 있다.

옵션 A. 쉽고, 편하고, 비싼 루트(비추)
가장 간편한 방법은 청두 국제공항(혹은 항공편이 있는 중국 내 다른 국내선 공항)에서 국내선 항공편을 타고 다오청야딩 공항으로 간 후, 빵차라고 부르는 합승택시를 타고 풍경구까지 이동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국내선 1시간, 빵차 2~3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국내선의 경우 스카이스캐너 기준 20만원 초중반대의 가격이며, 빵차는 1인당 100위안(약 2만원)이다. 합승 자리가 모두 채워져야 출발하는데 어차피 다오청야딩 공항에 내리는 승객은 대부분 야딩풍경구로 가는 관광객이기 때문에 승객 구하기가 어렵지는 않다.
그러나 후술할 고산병 리스크와 리탕행 교통편의 부재로 인해 별로 권하고 싶은 선택지는 아니다. 도저히 버스는 못타겠다면 들어갈 때는 버스를 이용하고 나올 때는 비행기를 이용하는 방식을 추천하고 싶다.

옵션 B. 어렵고, 불편하고, 저렴한 루트(추천)
가장 전통적이고, 가장 고된 육로 접근법이다. 그리고 추천하고 싶은 옵션이기도 하다.
청두 신난문 버스 터미널에서 다오청까지 가는 직행 버스를 이용하거나, 캉딩 혹은 리탕 등 중간 기점도시를 경유하여 갈 수 있다. 다오청 도착 후엔 옵션 A와 마찬가지로 빵차를 구하거나, 혹은 택시를 타고 이동하면 된다. 직행 버스는 약 18시간이 소요된다고 들었으나 직접 타보지 않아 확실하지 않다. 야딩에서 리탕까지 4시간, 리탕에서 청두까지 11시간 소요된 점을 고려하면 직행버스 역시 15~18시간 내외가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직행버스 이용 시 약 270위안(약 5만원), 중간도시 경유 시 그 이상이겠지만 어쨌건 비행기보단 압도적으로 저렴한 방법이다.
비용의 문제를 떠나서 고소 적응을 위해서라도 이 방법을 권하고 싶다. 다오청야딩 공항의 해발고도는 4,400m, 야딩풍경구 내의 해발고도도 3,000m 이상으로 이 정도 고도를 한번에 올리게 되면 99%확률로 고산병 당첨이다. 따라서 여행 컨디션 관리를 위해 고도가 낮은 캉딩에서 하루정도 묵고 가기를 강력하게 추천한다.


10월 19일 밤 12시, 까다로운 입국 심사를 뚫고 중국에 입국했다. 예약해 둔 공항 근처 호텔에서 쪽잠을 자고 공항으로 돌아와 다오청야딩 공항으로 향하는 국내선에 올랐다.

비행기 창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은 장관이었다. 그러나 착륙이 가까워 갈 때 쯤 환상적인 풍경과는 상반되는 장면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승무원들은 기내를 돌아다니며 곧 착륙할 예정이니 창문 덮개를 닫으라고 했다. 덮개를 닫으라고? 여는게 아니라? 특이한 정책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와중 앞자리에 앉아있던 한 남자가 일어섰다. 이륙 전 발끝까지 검은 옷에 무전기를 들고 비행기에 타는 모습을 보고 수상하다고 생각했던 그 남자였다. 남자는 돌아다니며 승객들에게 덮개를 닫으라고 지시했다. 후에 군 공항에 민항기가 내릴 때 종종 쓰이곤 하는 방법인 것을 알았지만 중국에서, 티베트 접경에서 겪은 일이라 유독 기억에 강렬하게 남았다.

탑승교를 지나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바로 출구가 나왔다. 야딩까지 인당 100위안에 가기로 하고 빵차를 탔다. 야딩 풍경구 정문까지 가는 빵차들이 여럿 대기하고 있어 차를 구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다오청 공항에서 야딩 풍경구 입구까지는 약 3시간 정도 걸린다.

동티벳에선 도로를 점거한 야크를 흔히 볼 수 있다

빵차를 타고 가는 내내 익숙한 듯 낯선 풍경이 펼쳐진다. 광활한 대지에 감탄하다가도 어느 순간 익숙한 나무들이 보이고, 또 갑자기 야크 떼가 나타나 길을 가로막는다. 독특한 풍광에 매료되어 창 밖을 보다보니 어느덧 야딩풍경구의 입구 마을 샹그릴라진에 도착했다. 빵차는 나를 제외한 승객들을 내려주고 알록달록한 등산복을 입은 중국인 아주머니들로 다시 자리를 채워 야딩풍경구 매표소로 향한다.

3. 고산병은 예고없이 찾아온다

매표소 앞, 계단을 몇 개 올랐을 뿐인데 숨이 찬다. 예상은 했지만 역시 앞뒤로 도합 12KG의 가방을 매고 고산지대를 걷는 건 쉽지 않다. 매표소 직원은 아직도 숨을 고르는 나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한다. 야딩 트래킹의 하이라이트인 우유해와 오색해가 보수공사에 들어가 볼 수 없다는 거였다. 친절한 직원은 번역기까지 써 가며 거짓말 같은 비보를 확인사살 시켜준다. 그렇다고 여기까지 와서 그냥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는 설산이라도 봐야겠으니 티켓을 달라고 했다. 직원은 맘대로 하라는 표정을 지으며 입장권을 발급해준다. 입장권은 240위안(약 45,000원). 중국 물가를 생각하면 꽤 비싼 가격이다.

야딩풍경구 입장 게이트. 오후라 그런지 사람은 많지 않았다

야딩풍경구 게이트를 지났지만 아직 끝이 아니다. 셔틀버스를 타고 약 1시간 가량 산길을 더 들어가야 비로소 트래킹 시작점에 닿을 수 있고, 메인 트래킹 코스까지 빠르게 이동하려면 여기서 미니카트로 30분가량 다시 이동해야 한다. 참고로 입장권에는 트래킹 시작지점까지 이동하는 셔틀버스가 포함되어 있으며, 3일 이내 2번 입장할 수 있다.
나는 풍경구 내에 있는 숙소마을 ‘야딩촌’에 호텔을 예약해두었기 때문에 트래킹 지점까지 가지 않고 중간에서 내렸다. 따로 정차 지점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고 탑승할 때 기사에게 하차 지점을 미리 말해두면 내려 주는 듯 한다. 이걸 나중에야 알았기 때문에 아까 빵차를 나눠탄 아주머니들이 내릴 때 눈치껏 따라 내렸다. 여기까지 들어오면 영어는 거의 통하지 않기 때문에, 중국어를 못한다면 번역기에 의존한 소통을 해야 한다. 다행인 점은 풍경구 내 어느 지점에서도 인터넷은 잘 터진다는 것.

침대에 누우면 보이는 설산. 건조한 탓에 내리쬐는 햇빛은 제법 따갑다

룸에서 보이는 풍경은 환상적이다. 설산이 보이는 창가에 욕조도 있다. 야딩촌 내 대부분의 숙소는 이런 기가막힌 뷰를 가지고 있지만 그만큼 숙박비가 비싸다. 1박 기준 최저가 7만원대, 가장 비싼 룸의 경우 30만원까지 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뷰라면 그 돈을 내고 묵을 가치가 있다고 느꼈다. 사실 일정과 예산만 넉넉했다면 이곳에만 며칠 더 눌러앉고 싶을 정도였다. 만약 이 글을 보고 야딩을 방문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예산을 약간만 더 투자해 이곳에 묵어보기를 강력 추천한다. 야딩촌 내의 숙소는 해외 사이트에는 등록되어 있지 않아 씨트립 혹은 트립닷컴 같은 중국 사이트를 통해서만 예약이 가능하다.
전날부터 제대로 못 자고 계속 이동한 탓에 짐을 풀자마자 피로감이 몰려왔다. 오후에 짧은 코스로 트래킹을 다녀오려던 계획을 미루고 일단 좀 자기로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짧은 낮잠이면 다시 쌩쌩해질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고도가 높은 탓에 이곳의 숙소들은 대부분 객실에 이런 산소발생기를 갖추고 있다

발등에 내리쬐는 햇살이 뜨거워서 깼다. 시계를 보니 그새 2시간이 훌쩍 지났다. 꽤 많이 잤는데도 몸은 무겁고 머리는 어지럽다. 배는 고픈데 밥 먹으러 나갈 힘도 없어서 아까 미리 사두었던 초코바 하나를 먹고 다시 누웠다. 어제부터 피로가 누적된 탓이라고 생각하며 뒤척이다 또 잠이 들었다. 그 후로 해가 넘어갈 때까지 자다 깨다를 반복했지만 컨디션은 좋아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나빠졌다. 머리는 깨질 것 같고 몸은 으슬으슬한게 열이 나는 것 같은 기분이다. 고산병 약도 챙겨먹었지만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 산소발생기를 끼고 있으면 좀 낫지만 안그래도 건조한 곳에서 코에 바람까지 불어대니 비염이 더 심해지는 기분이다. 남미 안데스 산맥에서도, 네팔 히말라야 산맥에서도 쌩쌩했는데 중국에서 고산병이라니, 나는 고산병 면역이라며 자신만만하게 한방에 고도를 올린 것이 원인인 듯 하다.


밥 먹으러 가는 길

다시 누워있다보니 이젠 참을 수 없이 배가 고파 대충 밖으로 나왔다. 그냥 걷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하필 식당 쪽은 오르막길이다. 심호흡을 하며 터덜터덜 걸어 식당까지 도착했다. 당연하게도 메뉴판에는 중국어 뿐이었고 번역기를 돌려 수프 하나를 주문했다. 떡국에 떡이 빠진 것 같은 무언가가 나왔다. 밥을 말아 대충 입으로 밀어넣고 다시 터덜터덜 걸어 호텔로 돌아왔다. 손을 씻으며 거울을 보니 입술이 보라색이다. 조난당한 사람같은 몰골이 제법 웃기다. 산소발생기를 끼자 입술색이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 여기까지 와서 아무것도 못한 게 아쉽지만 어차피 지금 컨디션으로 뭘 하는것도 무리고, 고산병이야 시간이 약인 병이라 내일은 괜찮아지기를 바라면서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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